선교역사 초기 위기 극복을 중심으로
2021 전도세미나
2019년 통계, 파송 선교사 수 28,039
[표1] 한국 종교 인구 통계, 1875-2025 ⓒ옥성득
[표1] 한국 종교 인구 통계, 1875-2025 ⓒ옥성득
[표2] 한국 장로교회와 감리교회의 성장, 1897-1933 ⓒ옥성득
천주교의 경우
신해박해 (1791년)
신유박해 (1801년)
기해박해 (1839년)
병오박해 (1846년)
병인박해 (1866년)
서구와 갈등
- 오페르트 도굴사건 (1866)
- 제너럴 셔먼호 사건 (1866)
- 신미양요 (1871), 척화비
서구 제국주의
오페르트가 남연군(대원군의 아버지) 묘소를 도굴할 때 가이드- 페롱 신부와 천주교인들
서구
일본제국주의
을사조약 당시 청년들이 드린 공동기도문 (상동교회)
1907년 강화도, 김동수 권사 처형
이동휘의 일동일교 운동
신학적으로 혼란했고, 내부 분열이 있었으며, 대형교회 현상과 지도자들의 도덕적 타락으로 대사회 영향력을 상실했고, 교회 내부로 고립되는 근본주의와 신앙 환원주의에 빠졌다. 결국 1930년대 후반부터 진행된 일제의 탄압에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고 신사참배와 군국주의를 지원하는 훼절한 교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