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조국광복회
8. 조선건국동맹
- 김일성 일파와 최현 일파 300여 명이 보천보에 나타나 보통학교, 우편소, 면사무소, 소방서 등을 습격하고 방화한 뒤 도주한 사건. 이 후 일본의 추적대까지 거의 전멸시킨 뒤 도주.
- 공산 게릴라 부대를 공포와 희열 사이에서 신화로 만든 사건
민생단으로 지목당한 사람은 고문과 구타 속에서 가짜 민생단원이 되기도 하고 다른 가짜 민생단원을 만들기도 하는 마녀사냥이 시작됨.
많은 진짜 민생단원이 숙청되기도 하였으나 그보다 더 많은 가짜 민생단원이 죽음.
중국 공산당의 동만특위는 반 민생단 투쟁을 펼치기로 결정.
김일성은 20세에 중국공산당에 입당하여 공산유격대로 활동.
반민생단투쟁의 여파로 투옥되기도 하였으나 구국군과의 친밀한 관계 덕에 금방 풀려남.
반민생단투쟁의 문제점을 제기 및 중국공산단과 한국공산당의 공동투쟁을 주장.
코민테른에서 한/중 민족의 연합을 바탕으로 한국의 독립을 위한 당과 부대를 설립하도록 지시받음
반민생단투쟁은 허무하게 종결되었으나 중국인과 한국인 사이의 불신의 벽은 높아졌음.
김일성은 중국인과 한국인의 연합부대를 조직하여 2군 내에서 가장 강력한 부대가 되었다.
만저우의 한국인 공산주의자들은 항일을 기치로 모든 계급과 계층을 망라한 독립운동기관인 조국광복회를 만들고자 함.
1935년 5월. 조국광복회의 창립선언과 10대 강령을 발표하고 재만한인조국광복회를 창설.
동북항일연군은 1935년 동계토벌로 붕괴된 동만의 근거지를 대체하고자 창바이현으로 진출을 시도. 이 때 김일성이 지휘하는 6사는 새 근거지와 백두산 주변에 건설한 밀영을 중심으로 조국광복회를 조직함.
창바이현 내의 조국광복회를 조직하고 국내에도 인원을 파견 및 접촉하여 국내 조국광복회인 조선민족해방동맹을 조직.
조국광복회는 항일청년동맹, 반일그룹, 반일회, 결사대, 구원회, 독서회, 야학회 등 다양한 외곽조직을 구축하였다. 이름이 다양한 이유는 별도의 조직인 것 처럼 은폐하기 위하여.
만저우의 한국인 공산주의자 들은 조선공산당의 재건에도 힘씀.
조국광복회는 동북항일연군의 군사력을 기반으로 만저우의 일원과 한반도 북부지역에 안착.
만저우의 한국인 공산주의자들은 조국광복회를 통해 "한국의 해방과 독립" 및 "만저우에 일본제국주의를 몰아내고 한국인 자치를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만저우의 한국인 공산주의자들은 한국의 해방을 통해 "인민정부"의 수립을 바랐다. 인민정부는 반일민족통일전선에 기반하여 각기 계층의 항일세력이 참여한 정부로 소비에트 정권과는 조금 달랐다. 노동자와 농민계급의 헤게모니(주도권)을 바탕으로 하여 부르주아 계급과 연대하는 정부이다.
이런 목적을 위해 만저우의 한국인 공산주의자가 행한 방법
보천보를 습격하는 것은 일제에 맞서 투쟁의 강도를 높이고자 한 "국내진공작전"
최현 부대와 김일성 부대의 양동 작전으로 보천보를 습격하였고 일제의 추격 토벌대 또한 크게 물리침
이 보천보 습격작전을 크게 알리고 식민지 통치 아래 있는 민중을 반일투쟁에 나서게 하기 위한 목적.
중일전쟁이 발발하고 만저우의 공산주의자들은 이를 기회로 여겨 더욱 활발하게 활동하기 시작
예상과 다르게 중일전쟁에서 일본이 공세를 확대하고 보천보 사건 또한 집중 수사를 진행
보천보 사건의 수사에서 큰 진전을 얻은 일본은 조국 광복회의 다수를 검거하였고 조국광복회는 결국 궤멸적 타격
3년 이상 지속된 일제의 토벌작전은 동북항일연군을 계속해서 괴롭혔고 결국 궤멸
1942년 4월 18일, 미국은 도쿄를 시작으로 요코하마, 나고야 오사카, 고베 등 일본의 주요 도시들을 공습하였고 일본은 저항하지 못 하였다. 도쿄에서 이 공습을 지켜보던 여운형은 일본의 패망을 확신하고 독립운동을 "다시" 행동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미 늙었으니 명예나 지위나 다 잊어버리고 다만 거름이 됩시다. 그리하여 모든 책임과 명예를 청년들에게 전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일 것입니다.
- 이만규, 여운형 투쟁사, 1946년
조선건국동맹의 목표는 "민족해방"과 "자주독립국가 건설"
자주독립을 위해서는 자력으로 일제를 구축하고 해방 필요
But. 일본은 미국, 중국 등의 연합군과 전쟁을 하고 있었고 한국은 관련 국가들로 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할 수 있는 방법은 민족의 대동단결 이라고 생각
국내외의 항일운동 세력은 모두 단결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고 서로 함께할 방법을 모색 중.
조선건국동맹은 친일파와 민족 반역자를 제외한 조직가능한 모든 세력의 힘을 하나로 뭉치는 것을 가장 중시함. 사회주의자든 민족주의자든, 노동자든 농민이든 학생이든 청년이든 하나의 깃발 아래 모으려고 시도.
조선건국동맹이 민족해방 후 이루고자 했던 나라는 다수의 민중을 중심으로 하는 민주주의 국가.
다만 조선건국동맹에 참여한 모든 세력이 공감할 수 있는 원칙을 강령속에 담았기 때문에 원하는 신국가의 모습이 구체적이지는 않다.
여운형은 '광범한 인민적 민주주의국가' 를 건설하여야 한다고 말하였고 '광범한 인민적 민주주의국가'란 상당히 모호하여 공산주의적 지향을 가지는지, 사회민주주의적 지향을 가지는지 불분명하다. 다만 여운형은 조선건국동맹이 과도적 성격의 단체로 규정하고 있었고 그는 헤게모니보다 건국을 더 우선시 하였다. → 그에게 중요한 것은 민족 역량을 총집중하여 독립을 완성하는 것.
민족 역량 총 집중을 위한 첫걸음은 국내 세력을 집중하는 것.
조선건국동맹은 중앙에 내부부를 두고 지방에는 각 도마다 소그룹으로 점 조직을 구성. 조직도를 그릴 수 없으며 이는 보안을 위해서.
또한 계층별 조직을 구성하여 농민, 노동자, 청년, 부녀자 등 각 계측을 소그룹으로 묶어 각자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함.
현재 조선건국동맹의 지방조직과 산하조직의 규모는 파악할 수 없음
또한 결성 초기부터 국내 모든 세력들과 연결을 도모하여 사회주의/민족주의 지도자들과 연계함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독립운동 단체 중 가장 큰 두 단체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조선독립동맹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중일전쟁의 여파로 계속해서 힘겨운 이동생활을 하다가 충칭에 안착
분열된 정치세력을 결합하여 한국독립당 이라는 통합 정당을 세움
김구를 주석으로 하는 단일 지도 체제
한국인 군대인 한국광복군을 창설하는데 성공
명실상부한 민족의 대표기관으로 부활 -> 명실상부한 민족의 최고기관
중국 화베이 지역의 한국인들을 기반으로 하는 공산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의 통일전선 조직
중국 공산당에 소속되어 활동하던 한국인 공산주의자
민족혁명당에서 활동하던 좌/우익 한국인
일본군에 강제 입영되었다가 탈출한 지원병
조선의용군이라는 강력한 군대
중국공산당의 강력한 영향하에 친중공 노선을 표방 & 중국공산당과 연대를 강화하였다.
조선건국동맹과 조선독립동맹의 연결은 조선독립동맹이 조직의 외연을 넓히기 위한 연대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당시 조선건국동맹은 비밀조직이었기 때문에 연결되기 까지 오래 걸렸지만 양측은 해방직전까지 매월 정기적으로 만나 의견을 조율하는 '완전한 연결을 맹약'하였다.
조선건국동맹은 임시정부와도 연결되려 하였지만 실패하였다. 당시 임시정부는 조선건국동맹의 존재를 몰랐고 국내의 어떤 조직과도 연결되지 못 하였다.
임시정부는 조선독립동맹과 합작을 추진하였고 조선독립동맹도 하루빨리 뭉쳐서 활동하고자 하였다.
일제의 패망이 확실시 되면서 국내외의 독립세력은 최후의 결전을 준비
민족해방을 위해선 최후의 전쟁을 성공적으로 끝내야 완전한 독립을 꿈꿀 수 있기 때문에 한국의 민족 역량을 총 동원하는 계획.
조선건국동맹은 해외로는 해외 독립운동 단체와 연합 군사행동을 계획
국내에서는 노농군 편성을 목적으로 하는 군사위원회를 설치,
무기확보를 위한 경기도 주안의 조병창에 있는 한국인 접촉
국내 봉기 및 해외세력의 국내 진공을 위한 준비
일본의 총독부 관료들은 일제의 패망이 가시화되면서 훗날 한국의 유력한 지도자가 될 것이 분명한 여운형이나 안재홍 등의 독립운동가와 시국을 논의하고자 함.
여운형과 안재홍은 총독부 관원에게 '민족대회'를 소집하겠다고 하여 총독부를 압박
안재홍은 합법적인 정치공간을 위하여 노력
이를 위해 총독부와의 대화채널을 유지하는 것에도 노력
민족대회 소집운동은 사실상 조선건국동맹의 표리양면전술
안으로는 최후의 일전을 준비하면서 박으로는 민족대회 소집운동으로 합법적인 투쟁
임시정부와 조선독립동맹이 구체적인 합의가 이루어지기 전, 조선건국동맹과 임시정부가 본격적인 만남을 가지기 전, 김일성과 임시정부/조선독립동맹/조선건국동맹과 만나기 전 조국은 해방되었다.
해방과 함께 독립운동 세력들 사이의 모든 합의는 연기처럼 사라졌고 새로운 싸움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