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부활의 근거
양창모 편집
2017.3.25
증거 vs 근거
- 논리적으로 빈틈 없음
- 입증 과정은 반박 불가능
- 전제 사항은 반박 가능
- "정황 상 그러하다"
=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다" - 이보다 더 나은
강력한 해석이 있다면
보완, 폐기 가능
수학, 철학
과학, 역사
- 아무도 생존해 있지 않다...
- 생존자가 있다고 해도
증언을 100% 신뢰할 수 있는가? - 기록에 의존
역사학자들을 기본적으로 신뢰
개요
- 사진자료
- 역사학자들이 말하는 정황상 근거
- 반문과 그에 대한 답변
(리 스트로벨 『예수는 역사다』 요약)
예루살렘 성묘 교회
중앙에 위치한 무덤은
예수님의 시신을 묻었던 곳으로 전해진다.
당연히 지금은 비어 있다.

이탈리아 토리노 대성당 소재.
예수님의 수의로 알려져 전해내려오기는 하지만,
진품인지는 논란이 있다.
손 부위에 못 박힌 상처 비슷한 것이 있다.
혈흔을 검사해본 결과 AB형이라고 한다.


역사학자들이
정황상 근거의 신뢰성을 결정하는 기준
- 기록의 시기
- 지리적 연관성
- 문화적 정확성
- 다중 증언
기록 시기의 기준
- 사건이 일어난 후 이를 기록하는 기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거짓이 스며들었을 가능성이 낮을 것이라는 전제. - 4복음서는 서기 65~110년 사이에 기록되었다.
- 제2 성전이 파괴되던 시점 전후로 기록 시작.
- 역사학자들 기준에는 짧은 기간이다.
- 비교
- 중국의 『서경(書經)』
2300~600 BC 사이의 역사를 500 BC 경에 기록 - 그리스의 헤로도토스 『역사』
1200~480 BC 사이의 역사를 440 BC 경에 기록 - 요세푸스 『유대 고대사』
창세기~70 AD 사이의 역사를 94 AD 경에 기록 - 마호메트 『코란』
창세기~570 AD 사이의 역사를 609~632 AD 사이에 기록
- 중국의 『서경(書經)』
지리적 연관성의 기준
-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묘소, 부활 후 나타난 장소 등
복음서에 언급된 지명은
모두 실존하는 장소이다.

200m
문화적 정확성의 기준
- 당시 흔했던 돌무덤 "케베르 (קבר)"
- 유대인의 장례의식 "크부라 (קבורה)" ↔ 신명기 21:22~23
죽음 후 가능하면 빠른 시간 내에 장사지낸다.- 아리마대 요셉이 당일 위험을 감수하고
시신을 인도받았다. (마태복음 27:57) - 아리마대 요셉은 산헤드린의 구성원이었다.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넘겨진 것은 산헤드린의 결정이었다.
- 아리마대 요셉이 당일 위험을 감수하고
- 참사로 인한 죽음은 시신에 정결 의식을 행하지 않고
그대로 베옷에 싸서 묻는다.
십자가형 당시 예수님은 벗은 몸이었고
토리노의 수의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참고 서적:
Lamm, The Jewish Way in Death and Mourning
다중 증언의 기준
- 4복음서 중 마가복음이 제일 먼저 기록되었고,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마가복음을 참고하여 쓰여졌고,
요한복음은 별도로 제일 마지막에 쓰여진 것으로
역사학자들에 의해 연구되어 있다.
= 최소 2명의 저자들이 부활에 대해 독립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 요한과 나머지 저자들 사이의 담합은 없었다. - Testimonium Flavianum
"... 그는 3일이 지난 후 살아나서 추종자들에게 나타났다.
그의 호칭을 따서 불리게 된 그리스도인이라는 무리는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요세푸스 『유대 고대사』 18권 3장
(조작이라는 논란은 여전히 존재)
줄어들지 않은 추종세력
- 당시에도 사교(邪敎)집단이 많았다.
이들의 교주를 잡아들이거나 처형하는 것으로
추종자들을 손쉽게 해산시킬 수 있었다. -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빌라도가 예수님의 시신을 다시 공개하는 것으로
논란을 종식시켰을 것이다. - 순교자들
부활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 소수의 무리가
담합으로 은폐시키고 훗날 이를 전하기 위해
목숨까지 버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로마 제국에는 기독교 이외에도 강력한 이데올로기와
추종 세력들이 다수 있었다.
당시 그리스도인이라는 신생 집단이 불과 20년만에
로마 황제가 위협을 느낄 만한 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부활이 사실이 아니었더라면 절대 불가능하다.
반문: 예수는 완전히 죽었던 것이 아니었다?
- 복음서에 기록된대로 채찍을 맞았으면 예수님은
골고다 언덕에 가기도 전에 저혈량 쇼크 상태였다고 보아야 한다. - 못이 박힌 관절부위에 뼈는 물론 신경도 완전 파괴되었어야 한다.
- 요한복음 19:34 — 창으로 찌르자 피와 물이 나왔다는 기록
"물" = 흉막삼출액 - 요한복음 19:33 — 로마 군인들도 죽음을 확인
- 결론: 기절했다가 회복되었을 수는 절대 없다.
그것도 3일만에.
Alexander Metherell, MD, PhD
미국 국립보건원
반문: 예수의 시신을 추종자들이 몰래 빼돌렸다?
- 무덤을 막고 있었던 돌은
한두 사람이 밀쳐서 움직일 수 있는 무게가 아니었다.
여러 사람이 동원되면 "몰래" 빼돌려질 수는 없다. - 마태복음 27:62~66
빌라도의 명령으로 경비병까지 붙여서 지켰다.
고작 3일만에 실패했더라면 경비병이 처형당했을 것은 물론이고
빌라도 본인에게도 큰 망신이었을 것이다. - 앞서 말했던대로, 훔치고 조작해 놓은 사건을
목숨 걸고 전하는 행동은 미친 짓이다.
William Lane Craig, PhD, ThD
철학, 역사학, 신학 교수
반문: 부활한 예수님을 보았다는 증언은 조작이다?
- 고린도전서 15:3~8
문체로 볼 때 51 AD이전. → 기록 시기의 기준 만족
바울이 회심 후 (각각 다른 장소에 있던) 베드로와 야고보에게
직접 찾아가서 전해들은 증언. 담합 가능성은 없다. - 고린도전서 15:6, 사도행전 1~5장 등
수백명의 사람들 사이에서 거짓을 은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중 누구 한 명이라도 진실(?)을 불면 끝났을 일이다. - 증인들이 단체 환각상태로 허상을 보았을 가능성,
그것도 똑같은 형태의 허상을 보았을 가능성은
정신과학적으로 있을 수 없다.
Gary Habermas, PhD
철학, 역사학, 신학 교수
Gary R. Collins, PhD
임상심리학 교수
결론: The silence is deafening.
"굉연한 침묵"
그 어떤 역사학자도 똑같은 정황상 근거를 놓고
예수 부활 허구론을 펼친 후 이를 바탕으로
나머지 중동 고대사를 재구성하는 데 성공한 적이 없다.
(부활에 대한 개인적 의혹을 가지는 것은 자유지만...)
예수 부활의 근거
By ChangMo “David” Yang
예수 부활의 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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